밑에 누가 질문했길래 답해줌.
로스쿨 인가 당시 점수가 전국 3위였음.
(당시 고법이 저 점수였던 이유는 여러 가설이 있긴 함)
상대적으로 고법에 비해
연법 성법이 변화하는 제도에 맞춰
준비를 철저히 한 거지.
근데 고법이 당시 압도적으로
사시 전국 2위였기 때문에
고로한테 100명을 줄 수는 없었음.
(사실 로스쿨 도입 당시엔 역대 사시 아웃풋 걍 무시하고 인가점수로만 정원 배분하겠다고 말은 했는데 그게 되겠냐 솔직히)
그렇다고 점수가 더 높은 성로한테
100명을 줄 수도 없고.
결국 연성고 3학교한테 전부 120명씩 배분한거임.
그리고 그게 결국 스노우볼이 돼서
성로가 연고로급으로 불릴만큼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법대 시절에 비해 로스쿨 시대에는
특정 학교가 압도할 수가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버림.
진짜 인생은 타이밍이고
시대와 제도가 변할 땐
거기에 발 맞춰 빠르게 대처하는 놈들이
승리자가 되는 거 같음.